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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폭력 폭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단순한 힘의 충돌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구조 자체에 내재적인 사건의 일종일지도 모른다.사르트르는 에서 이 세계의 모든 존재를 의식의 유무를 기준 삼아 두 영역으로 구분한다. 의식을 가지지 못한 ‘즉자존재’와 의식을 가진 ‘대자존재’가 그 두 영역이다. 즉자존재는 간단히 말해 사물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있는 존재, 현상 속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존재이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만지고 있는 노트북 등의 사물들이 즉자존재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대자존재는 단적으로 말해 ‘의식’을 가진 존재다. 이때 모든 의식은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다. 이를테면 나는 지금 눈앞의 노트북 화면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고, 그 안의 글자들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다. .. 2024. 11. 14.
[북노트] The Little Book of Common Sense Investing (John Bogle) 0. 한국어판 제목은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이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번역서들은 종종 어떤 방향으로 opinionated한 제목을 채택한다. "Getting Things Done"은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 "The Right It"은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이런 류의 번역에는 뭔가 오묘한 정서가 있다. 그것이 한국적인 것이다-라고 하면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런 정서.1. 존 보글은 자산운용사 뱅가드 그룹 (VOO를 운영하는 그 뱅가드 맞다)를 만든 사람이자, 인덱스 펀드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그의 투자 원칙은 간단히 말하자면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고 시장을 따라가라는 것이다.2. 바늘을 찾지 말고 건초더미를 사라 (Don't look for the needle -- buy t.. 2024. 5. 22.
[북노트] n분의 1의 함정 (하임 샤피라) 1. 게임이론이 다루는 여러 가지 주제를 조금의 수학도 등장시키지 않고(!) 가볍게, 부담없이 풀어내는 책이다. 작가의 다소 경박한(?) 문체와 (번역 이슈일수도 있다) 통통 튀는 분위기의 농담이 이 책의 묘미다. 게임이론의 기본적인 틀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 아주 재밌게 읽힐 책이다.2. 책에서 나온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재밌었던 건 비크리 경매 이야기였다. 예전에 공공경제학 수업을 들을 때 배웠던 내용이 떠올라서 반가웠다. 비크리 경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참가자는 각각 입찰가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제출하고, 입찰자 중에서 제일 높은 가격을 적어낸 사람이 입찰을 받는다. 이 때 특이한 것은 입찰받은 사람이 내는 금액이 그 사람이 적어낸 최고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적어낸 최고가 바로 다.. 2024. 5. 21.
[북노트] 행운에 속지 마라 (나심 탈레브) 0. 만사가 운은 아니다. 그러나 운은 생각보다 중요하다.1. 대부분의 사람은 운에 속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상을 마치 결정론적인 세상인 것처럼 착각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항상 필연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사후 확증 편향). 우리는 단지 수학적 사고가 부족해서 - 혹은 그런 사고가 생태적으로 불가능해서 - 오류를 저지른다. "우리 두뇌는 확률 개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므로 '모 아니면 도' 방식으로 단순화하려고 덤빈다. (…) 나는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운 좋은 바보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운 좋은 바보들'로 전달되었다."2. 우리는 때때로 인과관계를 거꾸로 파악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똑똑하고 근면하며 인내심이 있다고 해서, 똑똑하고 근면하며 인내심이 있.. 2024. 5. 21.
[북노트] 0 영 ZERO 零 (김사과) 1. 역겹다. 동시에 매력적이다. 2. 소시오패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폭력에 대한 묘사가 직설적이고 적나라하다. 그 기괴한 분위기가 작가의 독특한 문체와 어우러져 묘하게 중독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중간중간 흠칫하며 정신을 차리게 된다. 숨을 고르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3. 구토가 나올 정도로 내밀한 속마음을 쉴새없이 쏟아내는 '나'가 마침내 내리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세상은 잡아먹는 인간들과 잡아먹히는 인간들 두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타인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는 식인食人의 세계관. 누군가에게 망가지기 전에 먼저 그를 망가뜨리겠다는, 이로서 끊임없이 승리해야만 한다는 집착. 오로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목소리. 세계가 부질없.. 2024. 5. 21.
[북노트] 천 개의 파랑 (천선란) 1. 문득 소설이 읽고 싶어져서 고른 책이었다. 한국어로 쓰여진 동시대의 작가를 읽고 싶었다. 신중하게 세공된 유리장식같은 문장들.2. 우리보다 조금 더 미래에 사는 주인공들은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동일하게 마주한다. 동물은 여전히 식량이고 가축이고 운송수단이고 또 경주마이다. 기술의 발전이 무서운 속도로 일상에 스며들지만 누군가는 오래된 소방복 탓에 질식해 죽는다. 결혼흘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충무로에서 떠오르던 배우는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배우로 전락한다. 한 번의 외출을 위해 남들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완만한 경사로와 리프트,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 여전히 부족하다. 하기야 생체 적합성 소재로 새 .. 2024. 5. 21.